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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우 박인규 님께 "

시와 소설을 쓰는 문우 박 인규 씨가 목수가 되리라는 걸 예감 한 것은
10여년 전 어느 날 나무 한 덩이를 부여잡고 두어달을 손으로 깎고 다듬어 만든
홍송 탁자를 보면서부터 이다. 우리나라에서 나는 나무와 수작업만 고집하는 박 목수의
작품이 날로 이야기가 깊어지는 걸 보며 도대체 그의 작품 세계가 어디까지 진화를 할 지
자못 기대가 크다. 박 목수의 손에 안긴 나무는 거듭나는 기쁨을, 귀한 작품을 맞아 들인
사람들은 누리는 기쁨을 맛볼 테지만, 탁자를 만든 그도 땀 흘린 만큼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 진화(한국 수필작가회 회장)  

집안의 잡다한 가구들 중에서 내가 가장 신경을 쓰는 가구가 바로 상(床)이다. 나는 상에서 복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큰 상(賞)을 받는 일이 영광이라면 큰 상(床)을 받는 일은 복락이다. 그래서 나는 아무 상이나 함부로 집안에 들여 놓지 않는다. 특히 책상과 밥상과 찻상만은 절대로 가구점에서 만든 상품들을 쓰지 않는다.

모든 사물들은 저마다의 품성들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저마다의 품성 속에는 저마다의 기운이 깃들어 있다. 좋은 품성을 가진 가구는 좋은 기운을 발산한다. 장인이라면 마땅히 사물의 품성과 기운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박 목수는 진정한 장인이다. 그는 사물의 품성과 기운을 다스릴 줄 안다. 그것은 기술의 범주를 뛰어넘어 예술의 경지에 닿아야만 가능한 일이다.

가구점에서 만든 상품들은 석 달만 곁에 두고 보아도 정감이 고갈되거나 싫증이 느껴지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박 목수의 작품들은 아무리 오랜 세월을 곁에 두고 보아도 정감이 고갈되거나 싫증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은 박 목수가 목숨이 다한 나무들에게 새로운 목숨을 부여해주는 역량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박 목수의 작품들은 우아한 기품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외부로 발산하지 않는다. 어떤 장소에 놓이더라도 조화로움을 잃지 않으면서 그윽한 멋스러움을 함유하고 있다. 화려한 장식과 기술로 사람들의 눈을 현혹하는 가구점 제품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나는 소설가다. 하루의 모든 일과를 책상에서 보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설가인 나에게 있어서 책상은 밥상보다 거룩한 존재다. 하지만 모든 책상이 다 거룩한 존재는 아니다. 조악한 기운을 품고 있는 책상은 조악한 상념을 불러들인다. 반대로 정갈한 기운을 품고 있는 책상은 정갈한 감성을 불러들인다. 따라서 나는 좋은 글을 쓰려면 좋은 책상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물은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아간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비천한 음식은 비천한 밥상을 찾아가고 고귀한 음식은 고귀한 밥상을 찾아간다.
값비싼 재질과 현란한 기술로 만들어졌다고 고귀한 밥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울러 값싼 재질과 질박한 기술로 만들어졌다고 비천한 밥상이 되는 것도 아니다. 밥상 자체가 간직하고 있는 성품과 기운이 귀천을 결정하는 것이다.

차를 마시는 일은 운치를 마시는 일이며 인연을 마시는 일이다.
나는 운치 있는 찻상이 운치 있는 차를 불러들이고 운치 있는 차가 운치 있는 손님을 불러들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우리 집은 날마다 운치 있는 손님들이 끊이지 않는다. 한 달 평균 삼백 명 정도의 운치 있는 손님들이 내방한다. 나는 그 분들과 함께 차를 마시는 일을 인생의 큰 도락으로 생각한다.

정갈한 감성을 불러들이는 책상, 고귀한 음식을 불러들이는 밥상, 운치 있는 손님을 불러들이는 찻상. 이 세 가지 보물만 있으면 이 세상 어느 갑부도 부럽지 않다. 특히 그 세 가지 보물에 박 목수의 이름만 붙어 있다면 어떤 보물과도 바꾸지 않겠다.

이외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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